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리 S. 트루먼 (문단 편집) === 중화권의 평가 === [[중국]]의 입장에서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및 [[마오쩌둥]] 정권 수립 이후 1950년 [[6.25 전쟁]] 때 중국군 인해전술을 무력화한 계기로 한동안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외로 오늘날 상당수 중국인들은 그를 과거 중화민국 시절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같은 '연합국으로써 추축국 일본제국을 무너트린, 무찌른 영웅 동료'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해리 트루먼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을 두고 망할 [[르번구이쯔]] [[워누]]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꺾어버린 대통령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심지어 [[중화민국]]을 [[https://www.scmp.com/comment/opinion/article/3085206/mao-zedong-thought-japan-did-communist-party-great-favour-invading|침공해서 국공내전을 강제 종식시켜 처형 직전의 마오쩌둥을 살려내고]][* 실제로 마오쩌둥이 일본이 중국을 침공해줘서 살려줬으니 고맙다고 했고, 1945년 5월에는 그 보답으로 8년 동안 일본군 상대로 홀로 싸우던 [[국민당]]군 상대로, 동쪽에서 일본, 서쪽에서 공산군 즉 [[양면전쟁]]을 해줬다.], 2500만명을 학살하고 생화학 [[대량살상무기]]를 잔뜩 퍼부어버린 일본을, 아예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는 [[몰락 작전]]이 진짜로 실행됐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중국내의 극단주의자들도 있다. 중국내 반미 감정과는 별개로 트루먼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호평하는 기류가 있다. 만약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하지 않고 일본에 대한 전면 상륙 침공을 실행했다면 연합군뿐만이 아니라 일본군 점령지, 또는 식민지 주민들이 더 많이 희생당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베트남만해도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200만명만 해도, 1940년에 점령 뒤 1944년 10월까지가 절반이고, 그부터 1945년 8월까지 10개월 동안 나머지 절반을 죽인 것이니, 일본이 궁지에 몰리면서 식민지인들을 점점 혹사시켰다. [* 어쨌든 이런 사실은 감춘 채, 수십년간의 프로파간다 끝에 3000만명을 죽인 자들이 폭격 몇번으로 30만명이 죽고 그마저도 1/3이 강제노역하던 노예들 + 전후까지 방사능 방호 없이 치우라고 노역시켜 희생자들을 바다에 버린 건 쏙 빼먹은 채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하며 동서양에 걸쳐 먹혀들어 가고 있다.] [* 사실 일본은 9월에 미국에 생화학폭탄을 퍼부어 일본에서 개발중인 핵폭탄 2발([[니고 연구]])를 완성할 시간을 벌여 그걸로 중화민국과 미국에 핵전쟁을 해서 승리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 제국의 생화학병기 개발 중심지인 히로시마와, [[미쓰비시]]의 노예 공업단지인 나가사키에 대한 핵폭격은 사실 대본영이 항복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최대 늦게 잡아도 첫 폭격 이후 항복을 했지, 2발이나 투발될 때까지 항복을 안 한 이유는 핵공격과 무관하고 사실 소련의 [[8월의 폭풍 작전]]이 만주에서 성공하자, 이 기세를 몰아 한반도는 무시하고 그냥 그대로 홋카이도에 상륙할 뻔했기 때문이다. 이미 [[연합군 점령하 독일|1945년 6월에 독일이 연합국 4개국의 분할 통치]] 되는 걸 본 일본은 미군을 자신들을 보호해줄 감시견으로 쓰려고 마치 동유럽에서 전쟁범죄를 잔뜩 저지르고 서유럽으로 도주해서 굴라그를 피하려던 나치처럼 국가 전체를 서방으로 성공적으로 도주시킨 셈이다. 실제로 소련과 일본은 1956년까지 공식적으로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다.] 대만에서의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다. 당시 [[중공]]의 마오쩌둥은 대만을 끝장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에 대만상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자, 대만도 위험하다고 판단한 트루먼은 많은 각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 해협에 미 [[제7함대]] 소속의 항모전단을 파견해서 중공군의 대만상륙을 저지시켰다.[* 대신 당시 한국전에 참전하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장제스]]의 요구는 묵살했는데, 사실 대만의 국민당 장제스 진영은 한국전이 더 커져 미국이 대대적으로 참전하는 동북아 전쟁까지 확전이 되어야 [[중국 대륙]]을 다시 찾을 수 있을거라고 여겼기에 당연히 참전에 적극적이었는데, 반대로 미국은 당연히 그 순간 제3차세계대전인데 그건 감당할 수 없으니 제발 자중하고 대신 중공으로부터 대만은 지켜주겠다는 제스처로 항모전단을 파견한 측면도 있었다.] 이후 미군 주둔 등 대만에 대한 각종 경제적ㆍ군사적 지원도 해주며 오늘날 대만-미국 관계의 기반을 쌓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